락의 전설 : 부활과 시나위
시나위
신대철과 멤버
시나위의 리더 신대철은 음악적으로 금수저였습니다. 대한민국 록 음악의 선구자 신중현이 아버지였기 때문이죠. 신중현은 미군부대에서 'add4'라는 밴드활동을 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많이 아티스트를 키워냈습니다. 그 시기가 1960~70년대 사이이며 가요계에 미친 영향력이 실로 대단했습니다.
신대철은 이런 아버지 밑에서 자연스럽게 음악과 기타를 접하고, 1983년 고등학생 시절에 밴드를 시작해 우리나라 톱클래스 기타리스트로 성장하게 됩니다.
멤버 : 신대철(기타), 주준석(보컬), 안준섭(베이스), 김정휴(드럼) -> 진찬규(보컬) -> 김종서(보컬)
한참 레드제플린 로버트 플랜트에 빠져있던 김종서는 공연에서 자기 혼자 느낌에 취해 제멋대로 노래를 불러 신대철한테 해고당합니다. 이후 부활의 보컬이 되었지만 6개월 만에 탈퇴하고 시나위 2집부터 재가입하게 됩니다.
정규앨범 / 곡
1집) Heavy Metal Sinawe (1986년) - 크게 라디오를 켜고, 그대 앞에 난 촛불이여라
- 멤버 : 임재범, 신대철, 박영배, 강조수, 김형준
- 한국 최고의 보컬 중 한 명인 임재범이 시나위 데뷔 멤버였습니다.
- 시나위란 도 지역의 무속 음악에서 유래한 민속 기악 합주곡으로 단어 자체의 어감도 좋고 즉흥연주란 뜻도 가지고 있어서 신대철이 밴드명으로 쓰게 됩니다.
2집) Down and Up (1987년) - 새가 되어 가리
- 멤버 : 김종서(보컬), 신대철, 강기영, 김민기
- 신대철이 본인을 제외한 멤버 전원들 교체합니다. 김종서가 돌아온 2집은 한국 헤비메탈계의 최고 명반으로 꼽힐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습니다.
3집) Free-Man (1988년)
- 멤버 : 김성헌(보컬), 신대철, 김영진, 김민기
- 2집 이후 김종서가 신대철의 견해차로 탈퇴하고 김성헌을 투입하지만 흥행은 실패합니다.
4집) Four (1990년) - 겨울비
- 멤버 : 김종서(보컬), 신대철, 서태지(베이스), 오경환
- 시나위 최고의 앨범입니다. 서태지가 베이시스트로 합류하지만 락 음악 침체기로 성적이 좋지 않게 됩니다. 4집 이후 김종서가 서태지를 데리고 솔로로 전향하는 바람에 시나위는 해체하게 됩니다.
5집) 매 맞는 아이 (1995년)
- 멤버 : 손성훈->김바다(보컬), 신대철, 정한종(베이스), 신동현
- 손성훈이 멤버들을 데리고 와서 시나위는 부활합니다. 앨범 발매 후 손성훈이 탈퇴하고 드디어 김바다가 보컬이 됩니다.
6집) 은퇴선언 (1997년) - Circus, 죽은 나무, 은퇴선언
- 멤버 : 손성훈->김바다(보컬), 신대철, 정한종, 신동현
- 90년대 초반부터 전 세계에 얼터너티브의 바람이 불었고 시나위도 헤비메탈에서 얼터너티브로 전향을 성공했습니다. 미니앨범인 Circus가 대단한 판매량을 보여 6집을 내게 됩니다.
- 4집 때 함께 했던 '서태지'가 댄스음악으로 대한민국을 휩쓸고 은퇴선언 기자회견을 했었죠. 그걸 보면서 가용계의 은퇴 해프닝을 비판하려고 쓴 곡이라고 합니다. 서태지의 행보가 신대철의 마음에는 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.
7집) Psychedelos (1998년) - 희망가
- 멤버 : 손성훈->김바다(보컬), 신대철, 김경원(베이스), 신동현
- 김바다가 7집 이후 탈퇴합니다.
8집) Cheerleading Fan (2001년) - 금지된 노래
9집) Reason of Dead Bugs (2006년) - 작은 날개
- '나는 가수다'에서 시나위와 국카스텐이 붙었던 적이 있습니다. 얼터너티브 락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기대를 많이 했었죠 물론 보컬에서는 고음을 앞세운 젊은 피 하현우가 압도했지만, 시나위의 사운드 무게감만은 비교조차 되질 않았습니다.
- 시나위는 많은 뮤지션을 배출해 낸 훌륭한 밴드이고 respect 받아야 할 밴드입니다. 현재는 신대철과 김바다만이 시나위를 지키고 있지만 언젠가 그들의 묵직한 사운드를 다시 들려줄 날을 기다려 봅니다.
부활
강남에 시나위가 있었다면 강북에는 부활이 있었습니다.
'디 엔드'에서 '부활'로
1) 서문악기사 - 서대문에 있던 락의 메카.
2) 디엔드 - 1985년 4월 김태원이 서문악기사에서 이태윤을 만나 디 엔드를 결성하고 시나위에서 해고당한 김종서가 디 엔드에 합류
- 멤버 : 김태원, 이태윤, 황태순, 이지웅
- 1985년 김종서가 들어온 뒤 '부활'로 이름을 바꾸고 6개월 후 김종서는 탈퇴합니다. 대신 연습실에 자주 놀러 오던 동네 후배 이승철이 합류하게 되죠. (이승철이 동네 꼬마라니...)
- 이로서 김태원(기타), 이지웅(기타), 이승철(보컬), 김병찬(베이스), 황태순(드럼)의 멤버가 갖춰지게 됩니다.
앨범과 곡
1집) Rock Will Never Die (1987년) - 희야, 비와 당신의 이야기
2집) Remember (1987년) - 회상Ⅱ, Jill's Theme
3집) 기억상실 (1993년) - 소나기, 사랑할수록
4집) 잡념에 관하여 (1995년) - 기억이 부르는 날에
5집) 불의 발견 (1997년) - Lonely Night
6집) 이상 시선 (1998년)
7집) Color (2000년) - 안녕, 리플리히
8집) 새, 벽 (2002년) - Never Ending Story
9집) Over the Rainbow (2003년) - 아름다운 사실
10집) 서정 (2005년) - 추억이면
역대 보컬
거의 매 앨범마다 보컬이 바뀝니다. 그래서 사람들은 보컬들 탈퇴이유를 많이 궁금해하죠. 보컬들의 탈퇴이유와 밴드의 역사를 엮어서 정리해 봤어요.
1대) 김종서 - 음악적 견해차이, 리더가 누가 되느냐의 갈등, 매니저와의 문제 등의 이유로 김종서는 6개월 만에 팀을 나갑니다.
2대) 이승철(1, 2집) - 2집 이후 1991년 김태원이 대마초로 입건되어 교도소를 가는 바람에 팀이 잠시 해체됩니다.
3대) 김재기 (3집) - 음반 완성 직전에 안타깝게도 교통사고로 요절하게 됩니다.
4대) 김재희 (3,4집) - 김재기의 동생 김재희가 형을 대신에 부활의 보컬이 됩니다. 보컬로 인정받고 싶었지만 형의 그림자 때문에 우울증과 공황장애 때문에 탈퇴하게 됩니다.
5대) 박완규 (5집) - 생활고를 겪던 박완규는 금전적인 문제 때문에 탈퇴해 솔로로 활동합니다.
6대) 김기연 (6집) - 김기연의 성대결절과 키보드 최승찬과 김태원의 불화로 김태원을 제외한 나머지가 '주니퍼'를 결성해 자연스럽게 그만두게 됩니다.
7대) 이성욱 (7집) - 7집 실패로 이승철을 다시 보컬로 들이기 위해 이성욱을 탈퇴 시킴
8대) 이승철 (8집) - 이승철이 제작자인 이유로 갈등이 있었고 '이승철과 부활'을 고집했기 때문에 헤어지게 됩니다.
9대) 정단(9집) - 새로운 성공을 모색하기 위해 보컬 교체를 결정
10대) 정동하 (10, 11, 12집) - 가장 오랫동안 부활 보컬이었으나 2014년 부활을 떠나기로 결정
11대) 김동명 -
디 엔드에서 부활해 38년 동안 대한민국의 락음악을 책임진 자랑스러운 밴드입니다. 그 중심에는 김태원이 있었습니다. 불화도 많고 사건도 많았지만 그 고집 때문에 '부활'이라는 이름을 남기고 오랜동안 활동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. 10여 년 활동이 뜸해 아쉽기는 하지만 저는 묵묵히 14집을 기다려 보겠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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